결혼하신 분들 혹시 결혼기념일을 챙기시는지요? 혹은 각종 다른 기념일들을 챙기시나요? 저희들은 생일이나 기념일은 빠지지 않고 꼭 챙기는 편입니다. 평소에 완벽하게 잘하고 지낸다면 이런 기념일들이 별 의미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 있다 보니 기념일 같은 때라도 챙겨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탄탄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결혼 20년이 되도록 결혼기념일에 꼬박꼬박 한번도 빠짐없이 꽃, 카드, 현금 3종세트 를 옆지기로부터 받았습니다. 저는 따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현금 빼고 친필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고 있답니다.
오늘이 결혼기념일 인데요, 꽃 만 덩그러니 있고 카드도, 현금도 없어요.
물론 결혼기념일 축하해~ 라고 말은 하던데 3종셑트가 아닌 한 개... 꽃다발만 있었죠.
이건... 기념일을 기억해 줘서 고맙긴 한데 다른 두 개 가 빠져서 영~~ 기쁨이 없었어요
왜 두가지가 빠졌냐고 물어보려고 하다 치사한 것 같아 입만 뾰로통하게 고마워~라고 답하고 말았어요.
그게 그렇쟎아요
왜 돈 안 줘?
라고 묻는다는 게 자존심 상하거든요
온종일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옆지기는 서둘러 일하러 가고 혼자서 심통 나서 짜증이 났어요
옆지기가 퇴근시간이 예정보다 늦겠다고 연락 왔어요.
혼자 저녁 먹고 있자니 그것도 자꾸 화가 목젖까지 쿨컥쿨컥 올라오는 거예요
밥상에 올라와있는 김치에게 화가 나고,
노른자가 길 건너 마리아 아줌마 엉덩이처럼 퍽 퍼진 것에도 화 가 나더라고요.
그러다 이 정체 없는 화에 대해 불현듯 생각을 하게 됩니다.이게 이렇게 화가 날 일인가요? 기념일을 기억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토록 사소하고 너무나 작은 일에 분개해하고 있는 나를 보며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하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종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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