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시작되는 첫날엔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잡초가 천지로 덮인 텃밭이 눈에 거슬려 구석에 둔 호미를 들고 가시 같은 잡초들을 파내었어요. 잡초들은 늘 나의 채소들보다 빠르게 자라고 강력하게 뿌리를 내려서 뽑다 보면 내 채소들이 먼저 뽑혀 나오는걸 자주 겪습니다. 그러면 약 이 올라 뿌리 잘린 잡초를 패대기치며 화풀이를 합니다.
왜 언제나 잡초만 그렇게 씩씩하게 자라는걸까요? 먹을만하고 쓸모 있는 거는 왜 까다롭고 연약할까요?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봉숭아 씨앗을 늦었지만 7월에 심었어요
한달이 지나자 조그마하게 새싹이 올라오더니 엊그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어요
앙증맞게 자란 봉숭아 에게로 다가가 향기를 맡아봅니다
봉숭아라고 입을 오물거리며 소리를 내면 복숭아 라고 하는듯한 음 이 들립니다
복숭아라는 음 이 들리자 봉숭아가 복숭아 향을 타다닥~ 냅니다
완젼 다르지만 봉숭아 와 복숭아는 나 에 의해서 억지 혈육이 되어버렸다는....
삶도 그렇지않나요? 원치 않아도 타인에 의해 내가 어떤 것과 결부되어 내가 아닌 것이 나처럼 되어버리는 것요..

앞뜰에 불려 나온 봉숭아는 역시나 나의 이 억지를 잘 견디고 오래전 유명한 문학가들에 의해 시화詩化 된 귀한 화초답게 그 고귀한 자태를 잃지않습니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않고 소박하지만 귀함을 가진 봉숭아 는 우리 엄마가 참 좋아했던 꽃입니다.
혹한 시집살이 에도 인내심 많은 어머니는 분노나 좌절 미움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그저 고요하고 차분하고 말이 없었지요. 표정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마밑에 심겨 있던 봉숭아 꽃을 따와 손톱 위에 올리며 물들일 때 엷게 스며든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백반과 섞은 으깬 봉숭아 꽃잎을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로 싸서 하룻밤 지나 풀면 손톱뿐 아니라 아래손가락 살 도 주황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붉은 게 진하다 못해 살짝 검은 듯한 그 붉은색 이 어린 나의 눈에는 슬퍼 보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맞은 내 다리의 시퍼렇게 난 멍자국보다 더 슬퍼 보였어요.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배운 봉숭아 노래는 따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한국이었으면 이런 느낌 받았을까 아니면 눈물이 날까 이런 생각도 해요. 홍난파 곡이었지요?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 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러운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봉숭아는 봉선화라고도 하는데 저는 봉숭아라고 부를 때가 더 아리땁게 들립니다. 봉선화보다 더 많은 서사를 담고 있을 것 같은 소리로 들리거든요. 오늘 아침엔 봉숭아에서 복숭아 향이 났다고 우겼는데 (정말로 그러하였고) 나의 뇌 와 감각기관은 그렇다고 철저히 믿고 있었으니 저는 그러하다고 , 정말로 봉숭아에게서 복숭아 향이 난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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