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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골생활

독일땅에서 주렁주렁 열린 대추! 세상의 이야기가 알맹이가되다!

by 검은양(黑未)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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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땅에도 대추열매가 익어간다! 그것도 풍성하게 주렁주렁~

 

15년 만이다. 대추가 알이 차게 독일의 땅과 태양에게 허락을 받은 게!

그간에 딱 한번 열매가 열렸으나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시골에 남편과 방문했을 때 외삼촌께서 타국에서 나의 외로움에 위로가 될 나무가 될 것이라며 작은 모종을 하나

싸주었다.

그것은 어머니 가 살아계실 때 오며 가며 열매가 열릴 땐 하나씩 따드시던 어쩌면 어머니 영혼의 손가락 이

얹혀 있을지 모를 의미가 있는 나무다.

어린 대추나무는 우리의 정원에 심어져 매년 아주 디디게 자랐다.

 

그것이 혹독한 비바람과 적은 일조량에 얼마나 힘겨워하고 있는지가 느린 성장으로 알 수 있었다.

나무새싹도 정원의 다른 과실수에 비해 가장 늦게 틔웠다.

바싹 메말라 보이는 가지는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에 나도 모르게 그 옆을 서성거리게 하였는데 손을 닿아서

어루만져 볼라치면 뾰족한 가시로 밀쳐냈다.

그렇게 대추는 혼자 아파하고 혼자 견뎌내며 3년 전에는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그때 지른 나의 함성소리에 옆집할아버지께서 놀라 정원으로 뛰쳐 오셨던 적이 있다.

감동적이었다.

마치 자식 낳은 딸내미를 보는 것처럼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뒤통수와 앞이마가 반들반들 이렇게 이쁠 수가 없다.

 

 

 

그러다 몇 년간 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잎만 어느 정도 무성하게 있다가 겨울로 들어가면 앙상한

나무가 되어 여름이 다 될 때까지 죽은 듯 있었다.

대추나무는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웬만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히 있다가 무수히 많은 작은 잎사귀들을 점처럼 펼쳤다가 늦가을 회색빛 잎이

오그라들며 우수수 땅으로 떨어져 생의 마지막인 듯 작별을 한다.

 

매년 늦봄 이른 여름에 태어나서 늦가을에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또 태아 나고 이렇게 대추나무의 생애는 순환하고 있다.

올해 그는 그동안 안으로 품고 품었던 생명들을 대량 방출하였다.

엄청난 량에 함성도 안 나오고 말문이 막혔다.

너무 좋아도 소리가 안 나온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똑같이 열매가 맺었는데 크기는 제 각각이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여기서도 각자 다른 세상이 있다. 대추가 보는 세상, 독일 땅에 당당히 뿌리내려 15년이 되어서야 열매를 맺었다.

기쁨 속에서 잠시 질투가 났다.

나는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거늘 너는 드디어 해내었구나! 인간의 시기심이란 식물에게조차 미치고 있으니

한량없이 부끄럽다.

대추나무가 겪어냈을 그 고독 을, 갈증을 ,낯섦을 그와 함께 나눈다.

질투이전에 동지로서 언젠가 내게도 주렁주렁 맺힐 열매를 기대하며 묵묵히 나와 함께 있어줄 대추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대추나무를 누구보다 잘 헤아린 장석주 시인이 쓴 시를 읽어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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