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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골생활

올 한해 나에게 차려진 삶의 상차림을 꾸며보았습니다!

by 검은양(黑未) 202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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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애도기간이 발표되었다고 독일뉴스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섞여서 혼미해지는 날입니다. 뭐라도 다른 테마를 만들어 이 복잡하고 우울한 기분을 벗어나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기본욕구 담당 호르몬을 자극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먹는 것만큼 본능적이며 전 인류적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게 있을까요?

 

나의 한해를 밥상으로 차려보았다

24년 갑진년 (甲辰年)  청룡 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푸른 용 이라니... 바다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승천하는 걸 상상하니 뭔가가 웅장하게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던 1월( January , Januar) 정월초 에 두툼한 삼겹살을 숯불가마에 구워내어 바나나와 감자를 곁들였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의 바나나가 여기 와서 맛있게 구워졌기에 저 뾰족한 머리를 쳐들고 끝까지 예술을 부르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2월 Februar ,  February

 

2월이 왔습니다. 오세영의 시 속에서 말했듯 "현상이 결코 본질 일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입니다. 꽉 찬 달 이아니라 뭔가 여백을 보여주는 달이지요.  밥상에는 여백을 채워줄  갖가지 소스를 만들어 꽉 차게 만들어 봅니다.

 

 

 

3월 March , März 

청정하게 살다가 꽃피는 것도 보지 않고 서둘러 3월에 길을 떠나신 법정스님 이 생각이 나는 계절입니다. 정갈하고 소박한 죽으로 차려진 밥상을 만들어봅니다. 그리스 크레타 섬 깊은 산중의  그리스식 자연식입니다. 외부와 단절되어 수도승처럼 사는 마을 사람들이 자급자족 형식으로 만들어낸 식단이지요.

 

 

4월  April , April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나오고 섞이고, 기억과 욕망 휘젓기.... TS엘리엇 의 詩 를 읊는달이며 내가 좋아하는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죠. 벚꽃이 피며 색깔을 내기 시작하는 세상을 보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5월 May , Mai

아~ 드디어 5월입니다. 기쁜 녹색 잎사귀를 날개처럼 펄럭인다며 토마스 하디는 5월을 표현했습니다. 초록색은 평화를 상징하지요. 하늘엔 신 이 있고 땅에는 평화가 있다는 말을 하며 하하 호호하며 상큼하게 웃던 빨간 머리 앤이 생각납니다.

5월에는 무엇을 먹어도 그 맛이 풍요롭습니다.

 

 

6월 June , Juni

내가 태어난 달이라 애정이 많이 갑니다. 쌍둥이자리 여자입니다. 양면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산물을 특히 좋아합니다. 이탈리아 베니스근교에서 먹은 해산물요리는 최고였습니다. 레몬소금 소스에 찍어먹는 게 독특했지요.

 

 

 

7월 July , Juli

 

더운 날씨가 약 1주일 이어졌습니다. 독일은 덥다고 해도 딱히 기간이 길지 않은데요, 북독일은 특히나 북해와 엘베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그렇게 더워셔 힘든 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있어봤자 1 주일을 넘지 않아요.  그나마 그렇게 더운 날엔 입맛이 조금 떨어지긴 하죠. 한국처럼 냉국수나 냉면, 밀면 이런 게 잘 없어서 간단하게 빵에 올리브 오일, 그리고 올리브 몇 알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8월 August, August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손 닿는 곳에 있는 것을 사랑하라 "라는 프랑스속담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떠나오니 그곳에 좋아 보이고 또 그곳에 있을 때는 내가 있는 곳이 좋아 보이길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열정만 있다면 어느 곳이던 내 손 닿는 곳에 있는 게 최고임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면요리는 진리입니다.

 

 

 

 

9 월 September , September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하면 9월 인 것 같습니다. 서사가 있는 그런 달이에요. 변덕이 있을 수 있긴 하나 확률적으로 낮고 사자성어 천고마비 가 어울리는 하늘이죠. 기온이 정원의 과실수들에 달린 열매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꽉 차게 되니깐요.  이럴 때 Aperol Spritz 한잔을 식탁 위에 올리면 색감이 좋아서 마치 내 인생도 이렇게 알록달록 예뻐질 것 같아집니다.

 

 

10월 October, Oktober

10 월  들어서면서 기온은 급격히 내려가고 정원의 나뭇잎들은 수분이 점점 빠지면서 어떤 건 오히려 붉게 점박이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갈색으로 나이 들어감을 나타냅니다. 지방이 많은 소시지 종류가 맛있어지기 시작합니다. 남부독일 소시지는 특히나 감칠맛폭발하는 맛이 납니다.

 

 

11월 November , November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기, 우리들의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차디찬 11월의 빗속에서 촛불을 지키기가 너무도 힘겨워요. 단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우리는 함께 해왔죠 "

 

Guns N roses 가 부른 November rain입니다.  11월은 아무도 찾지 않는 달이라고 하는 의미가 뼛속깊이 공감이 되는 스산한 날 짭짤한 프랑스 노르망디 산 굴을 하나씩 입안으로 넣습니다. 바다가 친구가 되어버립니다.

 

 

 

12월 December , Dezember

올해 나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이라면 4월보다 12월이 잔인한 달 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럴마저 사라지게 만든 비상계엄령,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 보낼만한 마음의 여유를 못 낼 만큼 멘털이 정말 나가버렸습니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의미 해집니다. 전쟁터에서 전투력 상실한 군인처럼 돼버렸었습니다.  이럴 때는 다시 기운을 차리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그것도 잘~ 먹어야 합니다. 제대로 큰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다 함께 드십시다. 먹고 힘냅시다. 상 차려놨으니 어여어여 오셔서 같이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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