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날씨가 아름다울 리 가 없습니다. 독일북부 해안의 날씨는 악명 높거든요. 어떤 때는 3 주내 내 해 를 한 번도 못 본 적도 있거든요. 그럴 땐 머리에 꽃 꽂고 파도소리조차 서럽게 들리는 방파제를 걷게 됩니다. 딱~ 미치기 좋은 때 이라지요. 어쩌다 이런 척박한 곳에 살아서 우울증을 친구처럼 달고 사는지 한탄이 일기도 하지만 가끔씩 어제처럼 숨넘어갈 만큼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줄 때는 그간 참고 또 참고 견뎌낸 거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만 힘든게 아니다
예전에 어머니는 지독하게 힘든 사건을 한꺼번에 맞닥뜨릴 땐
"아이고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이다 " 라며 자신이 실상 6.25를 제대로 겪었을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셨더랬습니다. 그 환장할 난리통속에서 살아남았는데 그 이상 힘든 게 뭐가 있을까요?
요즘 다함께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힘듦은 같이 하기에 거뜬히 이겨낼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니깐요!
지금은 오히려 단단해진 연대감입니다. 이겨내겠죠 !
석양이 아름다울때
저는 석양을 바라보면 왠지 서글퍼집니다. 특히나 바다 쪽으로 보이는지는 해의 모습은 도무지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 하지 않는 후퇴라며 만천하에 발악을 하고 있다는 그림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아침에 뜨는 해 를 보는 걸 선호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특별한 석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은 후퇴가 아니라 내일을 기약하는 희망 같은 석양이었어요.
제가 만난 희망 가득 머금은 석양을 선보입니다.
저에게 희망을 하소연하고 있는 듯 해 가 최고로 화려한 연출을 하였습니다. 자연도 저렇게 애를 씁니다. 12월 3일 이후 내내 희망은 생기듯 사라졌고 이제는 희망조차 없다고 생각했건만...
저기 너머로 북해 가 웅장하게 뻗어가는 곳으로 꿈을 가득 실은 배 정기선, 화물선배 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지금 계절엔 드물지만 따뜻해지는 날 엔 유람선이 줄을 서겠죠. 붉은 해와 배 한 척 의 조합이 무척이나 환상적입니다.
오후 3시 반의 풍경입니다. 오랜만에 난 햇살에 사람들이 잽싸게 자전거를 끌어내어 산책을 나섰을 겁니다. 아마도 저 모습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겠죠. 아니면 근처 카페에 둘러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1월 햇살예찬을 늘어놓을 겁니다.
북해 방향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쭈욱~ 서서 연신 핸드폰사진을 찍어댑니다. 그러다 옆사람에게 친절하게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 der Sonnenuntergang )을 본 적이 있냐면서 말을 걸기시작하네요. 그 무뚝뚝한 북독 일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한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백석 시인 이 쓴 "석양" 아시나요?
등대와 석양의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봅니다. 사진 속에서 그 둘의 대화가 무엇일지 궁금해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귀를 쫑긋 세워봤어요.
그러다 백석 시인 의 " 석양 "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석양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영감들이 지나간다
영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피 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확실 을 썼다.
돌체돋보기다 대모체 돋보기 다로이도돋보기 다
영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라졌다.
저는 이 시가 유쾌해서 좋습니다. 뭔가 넌지시 웃음이 묻어나고 여유가 보입니다. 북해의 석양에서 백석을 떠 올린 건 저 등대와 석양의 유려한 만남 때문입니다.
모르는 단어 해석 곁들여 놓습니다.
글 마무리 : 시 詩속의 낯선 단어 해설
●쪽재피 : 족제비의 방언
●개발코: 너부죽하고 뭉툭하게 생긴 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장코 : 안장모양처럼 등이 잘록한 코 또는 코가 그렇게 생긴 사람
●질병코 : 질흙으로 만든 병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생긴 코
●학실 : "돋보기" 의 평안북도 방언
●돌체돋보기 : 돌안경, 돌이나 놋쇠로 테를 만든 안경
●대모체돋보기 :대모안경, 바다거북의 꼅데기로 테를 만든안경
●로이도돋보기 : 로이드안경, 굵은 셀롤로이드 테의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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