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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골생활

전혜린 이 떠올려지는 독일의 안개 자욱한겨울

by 검은양(黑未) 2025.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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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시절에 전혜린 책을 성경책처럼 들고 다니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말할 수 없이 고독했고 참으로 외로웠습니다. 부모로부터 일찍 떨어져 공장에 들어가서 미싱을 돌리며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 해 바늘이 손을 박고 있는지도 모르고 피가 솟구쳐 눈 알을 덮쳤을 때야 잠이 깨어 미싱을 멈췄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연일 안개가 이어져 햇빛구경을 한지가 3년은 된듯한 기분이 들지경입니다. 전혜린 그녀가 독일 뮌헨땅을 밟은때가 가을이었습니다. 10월 독일의 가을은 한국과는 달리 이미 겨울의 초입과도 같은 쌀쌀한 추위가 시작되지요.  회색하늘이 더 많아지며 침묵으로 들어서는 날씨입니다. 

 

전혜린에 대하여

교보문고

 

전혜린은 1934년 1월 1일 평안도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적힌 부분을 읽다 보면 전형적 금수저 부모를 둔 아이가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유년기를 보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법학자였다지요. 아버지처럼 영민했던 그녀는 경기여중고교를 그쳐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법학과 잘 맞지 않았어요.

 

법대 재학중 에 전혜린은 독일땅을 밟게 됩니다, 뮌헨대학에 입학한 그는 대학 시절의 전공인 법철학에서 문학으로 전공을 옮겼으며 수많은 문학 (특히 그릴파르처)과 철학 (니체) 세미나에 적극 참여하였어요.  가톨릭에 관심을 가졌기에 세례명을 마리아 막달레나를 얻게 되고요, 독일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1959년에 뮌헨대학에서 4년간의 학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모교인 경기여고와 서울대에서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1965년 1월10일 일요일 아침, 일요일에 태어난 전혜린은 일요일 아침에 하늘의 별로 돌아갔습니다. 독일에선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행운아라고 말을 하는데 짧지만 강렬하게 고독스러웠지만 천재적인 작품들을 만들고 떠났습니다.

 

 

전혜린 작품 한조각 을 올려놓습니다

 

 

 

 

 

 

공기에서는 서리와 안개와 낙엽 냄새가 섞여 났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공원에 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11월 중순, 아직 한국은 가을이지만 여기서는 눈이 큰 송이로 내렸다 눈 내리는 소리, 그리고 난로의 석탄이 타오르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눈이 와도 무섭게 왔다. 세워둔 자동차가 푹 파묻혀 안 보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한국서 가져온 얇은 천으로 된 학생용 검은 오버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학교에 다녔다. 점심은 커피대신 그 록크( 덥힌 포도주)와 수프로 했다. 그래도 추웠다. 때로는 눈이 멎고 다시 영원한 뮌헨의 하늘빛이 회색 구름장이 덮이거나 안개비가 촉촉이 내렸다. 나는 도터운 색양말을 신고 두꺼운 머릿수건을 쓰고 다시 공원으로 갔다. 사람이라고는 없고 나뭇가지가 앙상한 해골을 노정시키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검은 나무 가랑이들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변함없는 회색일까 하고... 아는 얼굴이나 목소리가 하나만 있어도 이 하늘이 이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물음 "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Woher sin Sie?)에서 도망하고 싶었고 황색 비전을 나는 쫓고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악몽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고 절망적인 " 고국까지의 거리감 (Pathos der Distanz)에 나는 앓고 있었다.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던 완전히 고독했던 내가 겪은 뮌헨의 첫가을이 그런데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뮌헨이 그때의 나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내가 뮌헨에 대해 신선한 호기심에 넘쳐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안개비와 구라파적 가스등과 함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나의 젊은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의 다시없이 절실했던 고독인지도 모른다.



 

 

 

 

글마무리

독일의 겨울은 지독합니다. 아무리 멘탈이 철강이라도 외로움의 습격에 버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선 견뎌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좌표를 잃고 어둡고 칙칙한 삶의  선상에서 표류되기 쉽상입니다. 밝은 곳으로 나가기 위해선 내 심장에 스스로 등불을 밝혀야만 길에서 헤매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젠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래야 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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