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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골생활

독일양로원에서 맞이하는 시어머니의생신에 대한 단상

by 검은양(黑未)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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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생일입니다. 여러 종류의 케이크도 준비하고 시어머니께서 특별히 좋아하는 바그너 초콜릿은 미리 공장에 들러 사 왔습니다.  4년 전에 양로원에 들어가신 이후로 생일을 그곳에서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명랑하고 걷는 걸 좋아하셨던 시어머니는 이제 웃음을 아예 모르시는 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우즐라(우르슬라 Ursula)

시어머니 이름입니다. 저는 우즐라라고 부르기가 여전히 낯설어서 그냥 엄마라고 부릅니다. 아시다시피 서양에선 존칭보다는 이름을 부르잖아요. 식구들이 그렇게 불러도 한국에서 교육받은  유교사상은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괜히 버릇없게 느껴지고 공경하는 마음이 달아나는 것 같거든요.

 

시어머니라고 굳이 말하려면 Schwiegermutter (슈비거무터) 단어가 깁니다. 물론 우리나라단어도 길어서 "어머니"라고 호칭을 합니다마는 "어머니"라는 호칭에서 시댁이라는 타인이라는 먼 거리감을 어쩌면 불편함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즐라라는 이름은 노벨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가 쓴 백 년 동안의 고독 책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 이기도합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즐라 (우르슬라)의 강인한 가족애,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지독하게 오래 살아서 온갖 행복과 불행을 겪고 마침내 비참하게 죽는 대서사의 인물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나의 시어머니 이름이 우즐라라는 걸 들었을 때 머릿속엔 이미 그림이 그려졌어요. 책 속의 인물을 벌써 스케치한 상태지요.  

 

마침내 그녀를 만났을 때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달랐어요. 부드럽고 쾌활하고 소녀 같았습니다. 감성이 풍부하셨던 그분은 늘 내게 엽서나 카드를 보냈습니다. 흘림체로 쓴 글씨체가 읽어내기가 좀 힘들었지만 마음이 담긴 글 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친구들과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면서 찍은 저사진에서는 생기 가득하게 뭔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 나눴을 호기심 어린 이야기 들이 사진을 뚫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제 아흔하고도 두 살을 훌쩍 넘겼으니....

 

92살 이 된 우즐라는 더 이상 이리저리 많이 다니기 좋아하던 모습이 아닙니다. 그 명랑하고 다부진 몸은 점점 작아져서

마치 백 년 동안의 고독 우즐라처럼 씨앗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비교적 상체가 발달하여 글래머였으며 키도 적당히 컸고 금발에다가 짙은 푸른 눈을 가져서 내가 처음 만났을 때 7 순이 넘었음에도 상당히 아름답다고 느껴졌었어요.   맥주공장을 한 부모님의 외동딸로 자란 그녀는 약간은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엔 은근 고부갈등이 좀 있었지요.

 

 

 

양로원에서의 생일은...

생일엔 당연히 꽃다발입니다. 우즐라가 워낙 꽃을 좋아하기도 해서 특별한 방문 때마다 꽃을 준비합니다.

맨 꼭대기층에 있는 우즐라의 방 은 원래 자기의 방을 옮겨놓은 듯 각종 사진과 그녀의 물품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들이 점점 생기를 잃고 있네요.

 

 

창가로 다가가서 꽃을 두었습니다.  양로원 측에서는 우리가 작은 축하파티를 할 수 있도록 커피와 음료 등을 셑팅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수간호사쯤 되시는 분이 작은 빵에 초를 꽃아 축하해주러 따로 오셨어요.

 

 

 

다 같이 둘러서서 노래 부르고 촛불을 껐습니다. 작년에는 그래도 한 번에 훅~ 촛불을 끄더니 올해는 힘이 없네요. 얼굴표정도 변화가 없습니다. 반응 은 느리고 눈동자는 이 세상에 초점이 없어 보입니다.  예전의 그 모습은 어디 간 걸까요?

 

나는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녀가 바싹하게 쪼그라드는 모습이 지금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처량해 보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온기 없이 말라져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가겠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창가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시어머니께 는 웃음 가득한 모습만 보이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께서 다시 예전의 웃음을 보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창밖은 파란 하늘입니다.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잿빛이더니 말입니다.

 

 

 

글마무리

시어머니 우즐라와 좋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갈등과 분열로 다툼도 있었고 미움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랬던 감정조차도 다시 걷어와서 오롯이 좀 더 있고 싶어 집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면 미움과 원망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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