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시는 겨울이 되면 더 읽고 싶어 집니다.
아프고 쓰린데 따뜻하고 위로가되는 이상한 시입니다.
지금은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허수경 시인을 그리워하며 다시 한번 그녀의 시 두 편을 읽어봅니다.
오늘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은 그녀의 열정적이면서도 지극히 이성적인 시 와 닮아있습니다.
무덤을 파헤치며 먼 과거를 상상하던 그녀가 해오던 일과도 닿아있습니다.
바깥 헛간에 둔 귤을 몇 알 들고 집안으로 가져와 주황색 껍질을 벗기니 하얀 속살이 드러납니다.얼음처럼 차가운 귤껍질은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립니다.
입안으로 가져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돕니다. 얼마 전 읽었던 "허수경 시인의 시 詩 " 가 생각이 났어요. 귤에서 그녀의 고독과 통증이 느껴져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귤이 입안에서 난감해합니다.
시인의 마지막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의 개정판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 실린 글 한 부분을 써봅니다.
허수경 시인은 위암으로 투병 중에 있었습니다. 시를 읽어 내려갈 때 그녀의 간절함과 더불어 완쾌를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겨우내 귤 한 알, 베란다 창틀 위에 놓여 있었다.
다시 암이 찾아오면서 병원에 입원을 할 때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귤 한 알,
창틀 위에 놓아두고 병원엘 갔지
(생략)
귤 한 알, 인공적으로 연명하는 나에게
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 작은 귤의 껍질을 깠다.
코로 가져갔다.
사계절이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향기만이 향기만이 그게 삶이라는 듯
병원 창틀에 작은 햇살이 머문다.
이런 날이면 어제의 오후엔 웬 눈이 왔는지 싶다.
청명한 오늘만을 살라고!
오늘만이 삶이라고!
2.
오래 죽어 있던 책 온전히 나였던 책 아프게 썼고,
처절하게 썼고,
무덤을 열고 들어가 나 스스로 죽음이 되어
모래 먼지의 이름으로 썼던 책.
다시 숨을 쉬게 된다니 기적만 같다.
이 기적이 내게도 올까 온다면,
크리스마스 벽난로 앞에 앉아 만질 수 있을 텐데 만지고 싶은데.
될까.
그게.
두 번째 詩
돌이킬 수 없었다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치욕스럽다, 할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쉽게 잊힐 일도 아니었다
흐느끼면서 혼자 떠나버린 나의 가방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칼은 젖어서 감기가 든 영혼은 자주 콜록거렸다
누런 아기를 손마디에 달고 흔들거리던 은행나무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첼로의 아픈 손가락을 쓸어주던 바람이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의상을 갈아입던 중년 가수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누구 때문도 아니었다 말 못 할 일이었으므로 고개를 흔들며 그들을 보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가락국수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글의 마무리글
북독일은 비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있습니다. 바람의 비명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같이 울어달라고, 같이 미쳐달라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합니다. 삶이라는 게 이렇게 느닷없는 것입니다. 자연이 자비로움을 잃으면 사춘기아이처럼 역행을 하기도 합니다. 자애로운 자연이 이럴 때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도 가끔씩 아플 것이고 참다가 폭파를 해야 할 수 도 있을 것일 거야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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