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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골생활

꽃이 진 해바라기 벌판에서

by 검은양(黑未)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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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동쪽으로 향하여 꼿꼿이 머릿결을 휘날리며 태양을 애타게 바라보던 해바라기의 그리움이 구월이 되자

서러움으로 변한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올해는 거나하게 물결무뉘를 이루었던 해바라기 벌판의 모습을 놓쳤다.

절정을 지난 해바라기 밭에는 시기를 놓쳐 피어난 몇몇 늦깎이 해바라기 꽃이 가장자리 언저리에서 앞선 선배들의

몰락을 위로하며 지켜보고 있는듯했다.

갈색으로 잎이 타들어가고 줄기는 말랐다. 푸르른 잎들이 가까이서 보니 물기가 빠져가고 있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빛나던 황금빛 얼굴은 거무거뭇 해졌고 천사의 날개처럼 하늘거리던 노란 머리는 다 빠져 몇 올 남지 않았다.

 

 

                                                                                         photo by 최서우

 

그것이 몰락은 아니다. 절정을 거쳐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익어가고 있는것이다.

외형은 비록 허름하나 ,말라비틀어져 곧 산 목숨처럼 보이지 않으나 그 속에서 딱딱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피조물을 보라!

나는 죽지않았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꽃이 진 벌판에서도 꽃의 소리는 들렸다. 한참을 그곳에서 서성였다.

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 역시 예쁘다.

물론 귀를 활짝열어야 들리고 눈은 세속의 망막체를 벗어 맑은 모습으로 봐야 제대로 보일 것이다.

 

해바라기의 용도

 

기름으로 짜서 산업용이나 식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 외에 해바라기를 심은 땅은

지질히 윤택하게 된다고 한다.

해바라기꽃이 만들어내는 씨앗은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인다.

호밀빵 위에 뿌리거나 샐러드에 넣어 먹으면 고소하다.

늘 내 집에 놀러 오는 지바퀴새와 박새들의 소중한 먹이가 되기도 하고 식용기름으로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지역에서는 민간요법으로 쓰는데 오일풀링이라고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해바라기는 어디가 가장 아름다울까?

 

이것에 대한 답은 어느 곳이든 해바라기가 핀 벌판은 비슷한 풍경이며 모두가 다 아름다운 곳이다라는 게

나의 견해다. 아주 오래전 혼자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헝가리를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본 끝없이 이어진

해바라기 벌판이 세상최고로 멋졌었는데 얼마 후 프랑스로 가면서 그곳에서 한없이 광활하게 핀 해바라기가

너무 멋졌다.

이후 텔레비전에서 본 동독의 튀링겐분지(Thüringer Becken) 역시 비 할 바 없이 세계최고의 해바라기평야였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어떤 곳을 가든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바라기에 관한 시 詩 한편

 

"해바라기의 비명"이라는 시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 접했는데 의미나 내용의 정확한 뜻도

모른 채 죽음이라는 것과 연관되어서인지 무조건 좋았다.

당시 약간의 지적허영에 사로잡혀 있던 때라 진짜 죽음을 알기나 했을까 싶은 약간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설익은 때였다. 해바라기 벌판에 서서도 이 시가 떠올랐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경북도 출생이며 30살에 정신착란으로 요절한 함형수의 시 다.

그의 강한 삶의 의지와 꿈이 해바라기 꽃으로 세상곳곳에서 다시 피어난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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